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작은 떨림

Jun. 2021

한 해에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휴대폰은 대략 19억 대. 그 안에는 소리 대신 메시지나 일정 등을 떨림으로 알려주는 진동모터가 꼭 하나씩 들어간다. 휴대폰의 가장 후미진 곳을 차지하는 이 작은 부품 덕분에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온 신호를 재빨리 알아챌 수 있다. 진동모터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계속해서 작고 얇아졌다. 모바일 기기가 자꾸 얇아지기 때문이다. ㈜영진하이텍의 김영호 대표는 후발주자로서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국내에서 가장 작고 얇은 진동모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진동모터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인데,
이 분야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입니까?

2011년부터 진동모터를 개발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꼭 4년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휴대폰 조립 및 시험 자동화 장비를 주로 취급했는데, 장치산업이다 보니 설비투자 주기에 따라 매출이 들쭉날쭉했습니다. 우리만의 고유 제품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고,진동모터라면 우리가 가진 노하우로 충분히 도전해볼 만했어요. 20년 넘게 자동화 장비를 개발해온 기술 노하우를 살리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개발 초기부터 자동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어느 정도 자동화가 이뤄졌나요?

리니어 진동모터를 기준으로 현재 타사의 경우 공정 자동화율이 10∼20%밖에 안 되지만, 우리는 이것을 50∼60%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우리만의 독특한 제품 내부 구조가 기술의 핵심입니다. 리니어 진동모터의 경우, 코일과 자석에 전기를 가해 자장을 일으키면 스프링이 위아래로 떨리면서 진동을 만들어냅니다. 경쟁사에서는 무빙 코일을 사용하는데, 코일이 움직이게 되면 관리가 까다롭습니다. 당연히 제조도 어려워지죠. 우리는 코일을 아주 작은 못처럼 생긴 요크(yoke, 전동기의 몸체)에 직접 감아서 고정시켰습니다. 코일이 고정되어 있으니 차지하는 공간이 좁아 모터를 더 작게 만들 수 있고, 생산 과정에서 코일이 끊어지는 등의 불량도 적어지는 것이죠. 생산이 자동화되었기 때문에 품질면에서도 뛰어납니다.


진동모터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각 타입별로 용도가 다른가요?

휴대전화용 진동모터만 놓고 보면 국내에서는 실린더 타입, 코인 타입, 리니어 타입이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반면, 가장 작고 얇게 만들 수 있는 BLDC(Brushless DC) 모터는 주로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린더 타입과 코인 타입은 수명이 짧고 소형화가 어려워 주로 폴더폰에 사용되는데, 현재는 작고 수명이 긴 리니어 타입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저가폰 생산이 줄어들면서 최근 국내 시장만 놓고 보면 리니어 타입이 50% 정도를 차지합니다.


BLDC 모터가 리니어 모터에 비해 작고 얇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동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납니다. 스프링에 의한 상하 진동으로 떨림을 만들어내는 리니어 모터와 달리 BLDC 모터는 회전력으로 떨림을 만듭니다. 수평 진동인 것이죠. 리니어 모터처럼 기계적 접촉 방식이 아닌, 반도체 소자(IC)를 이용한 전기적 스위칭에 의해 구동됩니다. 상하 진동을 하게 되면 일정 정도 높이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수평 진동을 하게 되면 높이가 낮아도 충분히 진동을 낼 수 있어 슬림화가 가능한 것이죠.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수명이 길 뿐 아니라 진동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것도 강점입니다. 일본 소니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한 지름 8㎜,두께 2.5㎜의 BLDC 모터가 국내에서 가장 작고 얇은 진동모터입니다.


일본 회사들이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개발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물론 몇 차례 퇴짜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자동화 장치 분야에서의 우리 회사의 이력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주더군요. 최소의 체적에서 최대의 토크를 내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회전 토크가 일정하게 계속 가해질 수 있도록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설계 포인트입니다. 또한 회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구적인 장치도 필요합니다. 크기가 워낙 작다보니 최적의 설계 조건을 찾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BLDC 진동모터에 대한
국내 제조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아직까지는 일본에 전량 수출하고 있지만, 국내 제조사에서 최근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르면 올해 안에 BLDC 진동모터가 사용된 스마트폰이 발매될 것으로 기대합니다.리니어 모터는 아무래도 두께를 줄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휴대폰이 더 얇아지면 BLDC 진동모터에 대한 수요가 당연히 더 늘어나겠죠. 특히 최근에 관심을 끌고 있는 웨어러블 기기에는 리니어 타입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기술로 현재 3㎜ 두께의 리니어 진동모터를 개발했는데, 이 정도가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BLDC 진동모터의 경우 2.5㎜까지 개발을 진행했지만, 시장에서 요청이 들어온다면 기술적으로 2㎜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휴대폰이든 웨어러블 기기든, 진동모터는 다른 부품의 크기와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다른 부품이 얇아지지 않는데 진동모터를 굳이 얇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반대로, 다른 부품들이 얇아지면 진동모터도 같이 얇아져야 합니다.


국내에서 여전히 리니어 모터를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요?

빠른 응답속도 때문입니다. 한번 회전을 해야 진동이 발생하는 BLDC에 비해 상하 진동을 하는 리니어 진동모터의 응답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응답속도가 빠르니 아무래도 햅틱 구현에 유리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진동이 연속될 때 다음 진동을 느끼려면 이전 진동이 빨리 꺼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을 폴링(falling)이라고 하는데, 폴링 속도는 BLDC가 리니어에 비해 두 배나 빠릅니다. 휴대폰 제조사에서 리니어 진동모터의 응답속도 수준을 BLDC 진동모터에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개발을 진행 중인데, 빠른 폴링 속도의 장점에 응답속도까지 리니어 진동모터 수준으로 맞출 수 있다면 BLDC 진동모터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그래서 최근 국내에서도 BLDC 진동모터를 개발하겠다는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휴대폰이 앞으로 더 얇아지면
결국 BLDC 모터 시장이
더 커질 거라는 전망도 가능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코인 타입에서 리니어 타입으로 시장이 옮겨온 것처럼 앞으로는 리니어 타입에서 BLDC 타입으로 점차 교체될 것으로 봅니다. 다만, 진동모터는 교체 주기가 다른 부품에 비해 깁니다. 제품군이 한번 형성되면 없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아직도 코인 모터가 사용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래서 진동모터 기술 개발을 시작하면서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자 했던 것입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정점을 쳤다는 분석이 있는데,
앞으로 진동모터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선진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할지 모르지만, 인도와 같은 신흥시장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꾸준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휴대폰 외에도 진동모터가 사용되는 분야가 늘어나고 있습니다.게임기나 의료기기, 완구 등에도 사용되고, 얼마 전에는 진동 파운데이션이 히트를 치면서 화장품 분야에서도 수요가 있었습니다. 수량은 얼마 안 되지만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진동마우스에 사용될 제품을 일부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부품과 달리 진동모터는 생명력이 깁니다. 터치폰이 나오면서 키패드 관련 업체들이 줄도산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죠. 삐삐 시절부터 등장한 진동모터는 휴대폰이 사라지지 않는 한 건재할 것입니다. 다만 응용 분야가 달라지고, 기술적으로 더 얇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있을 뿐이죠.

㈜영진하이텍은?

영진하이텍의 김영호 대표는 1997년 구미 공구상가에서 1인 기업으로 시작해 휴대폰, 반도체, LCD 등의 생산현장에 시험 및 조립 자동화 장비를 공급하며 영진하이텍을 공장자동화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1년 영진하이텍은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각종 모바일 기기의 진동 기능을 담당하는 진동모터 개발에 나서며 전자부품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후발주자였지만 자동화 분야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며 3년여의 연구 끝에 결국 최소형 진동모터 개발에 성공했다. 이 기술로 영진하이텍은 지난해 9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이달의 산업기술상을 수상했다.

출처:기사보기 : CEO의 맛있는 테크 (kosmes.or.kr)